[단독] 빨갱이몰아 때리고 물고문 집총거부자 ‘고의적 타살’ : 한겨레 을 읽고서...
논리보다는 그냥 감상 차원에서 쓴다.

아마도 나는 여호와의 증인 신자,
특히 그 중에서도 그 종교 때문에 병역을 거부하는 신자들을
가장 많이 접해본 비신자 축에 낄 것이다.
어림잡아 50여명 이상을 보았을 것이다.
아니, 보았다는 말은 사실 적합하지 않다. 그 이상이었다.

나는 모 사단의 신병교육대의 대대 인사과가 보직이었는데,
훈련병들이 입소할때마다 신병교육대 측의 훈련병 인수 과정에 참석해야만 했다.
훈련병들이 입소하면 맨 먼저 하는 일은
일단 본인인지 아닌지 명부와 대조하면서 신원파악을 하면서 훈련중대 배정을 하는 것이고,
이것이 끝나면 민간기관인 병무청과 사단 사령부, 신병교육대 사이에서
인원 인수인계가 이루어진다.
즉, 이제 민간인에서 훈련병이라는 군인으로 그들의 신분이 변경되는 것이다.

그 이후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여호와의 증인 신자이기 때문에 총을 들 수 없는 사람들은
맨앞으로 나와서 신고하도록 한다.
이 종교적 병역거부자들은 단 한번의 주저함도 없이 지시에 따라 신고한다.

이 때 어느 중대에 그런 사람들이 많이 배치되어 있느냐에 따라
각 중대의 행정병들의 희비가 엇갈린다.
여호와의 증인이라고 해서 무작정 영창에 보낼 수는 없는 것이라,
중대장이 군복과 총을 건네는데 거부하는 사진을 연출해서 찍고
집총을 거부한다는 자술서를 쓰게 하고
이에 따라 조서를 꾸미는 일들을 해야 하는데,
원래 법률에 관련된 서류들이 항상 그러하듯이
이 일들은 군대에서 벌어지는 행정 업무 중에 가장 시간이 많이 들고
고난도에 속하는 일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중대 행정병들에게 여호와의 증인은 종종 증오의 대상이 되었다.
더구나 한달남짓마다 천여명의 사람이 들어왔다 나갔다 하는 데 따른,
모든 사병들이 다 가야만 하는 유격훈련마저 열외시켜 버릴 정도였던,
살인적인 신병교육대 행정병들의 업무량을 고려한다면,
그 사람들의 그 증오를 무작정 비난하기도 참 어려웠다.
(저런 증오의 극단적인 경우는 아마 박정희 시절에 있었나 보다.
 [단독] 빨갱이몰아 때리고 물고문 집총거부자 ‘고의적 타살’ : 한겨레 2009-01-16 참고 )

입소 후 며칠동안 여호와의 증인들은 중대에서 저런 서류를 꾸미는 동안 대기 상태에 있는데,
이미 입소하기 전에 교회에서 사전교육을 다 받아오는 것인지
모든 과정을 전혀 동요 없이 미리 다 알고 있었다는 듯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이 사람들은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전혀 두려움이 없었다. (이게 종교의 힘이겠지.)
영창에 몇주일 갔다가 돌아오는데
돌아와서도 '개전의 정이 보이지 않는다'는 사진과 서류들을 다시 꾸며서
다시 군사법기관으로 보냄으로써 신병교육대의 할일은 끝이 난다.
이렇게 서류 꾸미고 영창에 데려가고 데려오면서 얘기를 나눠보곤 했는데
뭐랄까... 좀 답답하기도 하면서 순수해 보이기도 하면서...
하여간 뭐라 말하기가 어려운 느낌이긴 했는데,
그런 종교적 신념과 에너지로 뭔가를 할 수 있는 다른 통로가 주어진다면
매우 성실하게 해 낼 수 있으리라는 생각을 갖게 만들었다.

그런데 내가 개인적으로 놀란 것은,
그 수십명 중에서 단 한 명도 영창 다녀온 이후에 마음을 바꾼 사람은 없었다는 점이다.
심지어는 산업특례요원인 경우에도 마음을 바꾸지 않더라.
그냥 군대 빠지기 위해서라면 한 달만 눈 딱 감고 훈련받으면  군대문제가 '거의' 해결되는 셈이나 다름 없는데도
기어이 훈련 안 받고 군형무소로 가서 몇년 복역하기로 하는 걸 보며 참 뭐라 할 말이 없었다.

여호와의 증인이 기독교 내에서 이단인지 아닌지 어떤 평가를 받는지 나는 알 바 아니고...
한 가지 주목할 것은 그들의 이런 집총거부의 신념이 역사적으로 매우 일관성이 있다는 것이다.
일제의 징병이나 신사참배 강요에 개신교 측은 협력했지만
그들은 끝까지 종교적 신념을 지키기 위해 거부했다고 한다.

제작년에는 대체복무를 허용하기로 했었는데
( ‘종교적 병역거부자’에 대체복무 허용 결정 : 한겨레 2007-09-18 참고 )
이명박이 집권하면서 그 결정을 뒤집었다.
( 국방부 “병역거부자 대체복무 불가" : 한겨레 2008.12.24 )
한국 남자들은 (나도 좀 그렇지만) 군대 얘기만 나오면 피가 거꾸로 도는데,
이제는 좀 저울질을 다시 한 번 해 봤으면 한다.
이제 종교적 신념을 위해 병역을 거부한 사람이 5천명이 넘었다 하니
( 종교적 신념에 의한 병역거부자 5천명 넘어 : 한겨레 2009.01.08 참고)
무시할 만한 숫자는 아니다.
이 사람들을 감방에 수감하면서 사회적으로 얻는 것 없이 비용만 치르느냐
이 사람들에게 길고 고된 다른 임무를 부여해서 사회적으로 활용을 하느냐는 문제에
다시 한 번 심사숙고할 때가 되지 않았을까.
까놓고 얘기해서, 나환자 병원에서 3~5년씩 환자 돌보는 것이
군대보다 훨씬 편하고 안전한 일이라고 나는 생각 안 한다.


Posted by Rainyva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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