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오바마의 대선 승리 이후 TV에 나오는 미국인들의 모습을 보니
    자꾸 1997년과 2002년의 우리나라 대선이 떠오른다.

    혜성처럼 등장, 입지전적인 경력, 화려한 말빨,
    열성적 팬(?)들의 존재, 인터넷을 활용한 선거운동,
    소액 모금을 통한 선거자금 조달, 젊은 층의 환호,
    돈 잘 버는 변호사의 길을 외면하고 사회활동에 주력
    등의 측면을 보면
    노무현 당선 때와 비슷한 면이 많아 보이는데...

    소외계층의 숙원을 풀었다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는 점,
    그리고 여당 측의 경제 실패로 인해 당선되었다는 측면을 고려하면
    그 의미로 보아 김대중 당선 때와 더 비슷하다 할 수 있겠다.

  2. 오바마의 당선과 인종차별 문제에 대해 냉정하게 평가해 본다면
    사실 지금 미국인들과 언론의 반응은 호들갑에 불과하다.

    오바마가 (절반)흑인임에도 불구하고 당선이 가능했던 것은
    다음의 조건들이 모두 다 갖춰졌기 때문이다.
      1. 백인외할머니의 보살핌에 대해 얘기거리로 삼을수 있다.
      2. 오바마가 기독교 신자이다.
      3. 부시가 이라크 전쟁과 경제에서 뻘짓을 심하게 해서 공화당 인기가 별로다.
    이런 것들이 백인 표를 어느정도 끌어오는 데 기여를 했던 것이고
    이것들 중 어느 하나라도 충족이 안 되었다면 오바마 당선은 어려웠을 것이다.
    이번 승리도 득표율로 따진다면 겨우겨우 과반수를 넘겼을 뿐이니까.

    오바마는 지지율이 한참 앞서가다가 인종이슈가 불거지면서 지지율이 잠시 역전되었다가
    금융위기가 터지면서 다시 앞서기 시작하여 결국 당선되었는데,
    만일 금융위기가 안 터졌다면 승부의 추가 매케인 쪽으로 기울지 않았으리라는 보장도 없다.

    부시가 그렇게 닭짓을 했어도 득표율은 겨우 3% 이내의 차이다.
    아무리 미국이 양당제가 확고하다고는 하나 좀 심한 것이다.
    다른 이유를 찾기가 어렵다.
    미국은 여전히 백인들의 국가이고 개신교도들의 국가인 것이다.
    오바마가 흑인이어서 그런 것이고,
    그깟 3%는 오바마가 기독교 신자가 아니었다면, 백인 할머니의 얘깃거리가 없었다면
    금방 까먹을 수 있는 차이에 불과하다.

    그러니까 엄밀히 말하면,
    예전에는 흑인은 어떤 조건하에서도 대통령 당선이 불가능했었는데,
    이제는 까다로운 조건을 만족하고 어떤 극단적 정치경제적 상황이 닥치면
    흑인도 당선이 가능할 수도 있는 분위기가 되었다는 정도의 의미가 있겠다.

    마치 1997년에 김대중이
      1. 김종필과 연합한다.
      2. 이회창의 병역비리와 빌라 비리가 터졌다.
      3. IMF 경제위기가 닥쳤다.
      4. X맨 이인제가 대선레이스를 완주했다.
    이 희귀한 사건들이 동시에 발생한 덕에 겨우겨우 간발의 차이로 당선된 것과 비슷한 것이다.
    예전에는 호남 출신은 어떤 조건하에서도 대통령 당선이 불가능했었는데,
    1997년 선거가 증명한 것은 저런 확률 낮은 사건이 연달아 터지면 가능할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그것도 선거 레이스 대부분의 기간 동안 뒤쳐지다가
    선거일을 즈음하여 지지율이 피크에 올랐을때 마침 선거가 그 때라 승리했던 것이다.
    그걸 보고 마치 세상이 완전히 넘어온 것처럼 기뻐하며 오버했던 것이고,
    지지자들은 기대수준만 높아져서 성급하게 배신감만 느끼며 떠나간 것이고,
    언론,사법부,검찰,경찰,기업 등에 뿌리박은, 수단방법 안 가리는 상대방 앞에서
    10년을 여당답게 지내보지 못하고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만 것이다.
    결국 (상대를 제압하지 못하는 의미에서의) '무능함'은 죄악이라는 가르침만 남긴 채...

  3. 지금의 경제위기로 보아 오바마가 자신의 뜻대로 의료보험 개혁, 교육 개선 등의 정책을 펼 수 있을지는 상당히 의문이다.
    며칠전 CNN인터뷰에서 오바마에게 자신의 5가지 중점 사항들을 우선순위를 매겨 보라는 질문에
    그 다섯가지 모두 첫번째 우선순위는 아니고 지금의 금융위기,경제위기 수습이 첫번째라는 답을 하였다.
    민주당의 색깔이 너무 분명하게 드러나는 것을 피하고 '경제대통령'의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
    노련하게 질문을 비껴가기 위해 그렇게 답했으리라는 짐작도 들긴 하지만,
    일단은 수단방법 안 가리고 경제 안정시키기에 몰두해야 하는 처지는 그대로다.

    김대중이 IMF극복하겠다고 신자유주의 정책에 몰두하면서 집권초기를 그대로 날려 버리면서
    자신이 평소 정견에 부합한 정책을 펼 기회를 순식간에 잃어버린 것이 연상되는 부분이다.

  4. 이제 나도 늙어버린 것인지 몰라도,
    TV에서 열광하는 미국인들을 보면 우리나라의 최근 10년이 오버랩되면서
    "너네도 지금은 저리 열광하지만, 어차피 세상은 오바마 하나 당선된 걸로는 안 바뀌지"
    하는 씁쓸한 생각이 들곤 한다.

    기대수준이 너무 높다 보면 지지층이 빨리 이탈하기도 하고,
    비열한 인종주의자(우리나라는 지역주의자)들은 그 틈을 재빨리 파고 들어
    대통령을 식물인간 만드는 것을 즐기게 된다.
    그러다 보면 지지층이 더 이탈하는 악순환이 반복되다가
    결국 나중에는 터무니없는 '적그리스도'에게 여지없이 밟히게 된다.
    오바마에 대한 열광이 걱정되는 대목이다.

  5. 한국이나 미국이나 어차피 '국개론'이 진실에 가깝긴 하고,
    이번 당선이 겨우 미약한 한 발자국에 불과하긴 하지만,
    어차피 세상은 이렇게 해서 점점 변해 가는 것이니...

    게다가 오바마가 김대중보다는 훨씬 좋은 조건에 있는 점도 있다.
    일단은 상원 하원에서 다수당을 차지하고 있다는 점.
    그리고 미국 정치판은 한국 정치판보다는 패거리 문화에 덜 물들어 있다는 점.
    바이든은 부통령일 뿐, 김종필처럼 지분을 행사하며 발목잡기 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점.
    조중동 같은 쓰레기 언론들의 영향력이 압도적이지 않다는 점.

  6. 설사 오바마가 별다른 치적을 못 남긴다 하더라도
    오바마의 최고 업적은 대통령으로 당선된 것 그 자체가 될 것이며 그것으로 충분하다. 여전히.
    김대중과 노무현이 그러했던 것처럼.

  7. 오바마가 좋은 대통령으로 남았으면 좋겠고,
    멋지게 잘 해냈으면 좋겠고,
    무엇보다도... 임기 도중이나 이후에 그의 몫에 합당한 평가를 받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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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Rainyva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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