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시절 초기, 머리와 입으로는 '진보'가 어쩌고 '소수자'와 '다양성'과 '생태계'가 어쩌고 '똘레랑스'가 어쩌고
밤새워 침튀기며 떠들어 댈 수 있었겠지만,
그거야 어디까지나 그냥 머리 속에서만 일어나는 '사고실험'이었을 뿐이고
내가 그것들에 대해 가슴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던 가장 큰 두 번의 계기는 모두 군대에서였다.
한 가지는 2009/01/16 - 여호와의 증인에 대한 기억... 에서 얘기했던 여호와의 증인.
다른 한 가지는 트랜스젠더 문제이다.
2009/01/16 - 여호와의 증인에 대한 기억... 에서 얘기한 대로
나는 모 사단의 신병교육대의 대대 인사과가 보직이었는데,
훈련병들이 입소할때마다 신병교육대 측의 훈련병 인수에 참석해서 신원확인을 하고
병무청/사단사령부로부터 우리 신병교육대로 인원을 인수인계받는 일을 한다.
어느 화창한 날에 또 그 인도인접이 있었는데,
어디선가 진한 화장 냄새가 확 풍겨와서 주위를 둘러보니
정말 눈부시게 예쁜 아가씨 한 명이 화사한 옷을 입고
저 멀리 떨어진 그늘의 의자에 다소곳이 앉아 있었다.
그렇게 여자가 와서 앉아 있는 일이 흔한 일은 아니지만 사실 그리 드문 일도 아닌 것이,
입소한 훈련병이 정신질환이 있다거나 질병이 있는 경우
누나나 친척이 와서 무사히 입소가 되었는지 지켜보다가 가도록 허용해 주는 경우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정도로 눈에 띄는 미모는 보기 힘들었고
그 정도로 심하게 향수를 뿌리고 오는 경우도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겨우 얼굴 정도 알고 지내던 이웃 부대 보급병이 얼쩡거리면서 내게 괜히 반가운 척 했다.
"레베 일병님, 제 친구가 이번에 들어왔는데 잘 좀 부탁합니다."
"아, 그래요? 제게 부탁해서 뭐하나요? 저야 그냥 오늘 지나면 별 상관없는데..."
"아뇨, 그게 아니고... 그 친구가 아마도 훈련을 못 받을 것 같은데요..."
"아, 어디 아픈가 보네요?"
"아니... 그게 아니고...."
"네?"
"저기 의자에 앉아 있는 저 친구가 제 친구인데요..."
(잘 못 알아듣고) "아, 저기 보이는 여자친구의 남동생이 입대했나요?"
"아니... 저기 여자처럼 보이는 친구가 제 친구라고요... 쟤가 원래 옛날부터 좀 저래요..."
뭔가 잘 이해가 안 되어서 어리둥절해 하고 있는데, 불현듯 머리를 때리는 것이 있었다.
"아.... 그렇군요... 아..."
그리고서 아무 말도 못 했다.
하여간... 어찌저찌 훈련병 입소 절차를 다 마치고,
군복무가 불가할 정도의 문제가 있어 정밀신체검사를 다시 받을 사람들은
다른 훈련병들의 분위기를 흐리지 않도록 따로 격리시켜서
정밀신체검사가 끝날때까지 내무반을 따로 쓰도록 했는데,
당연히 그 친구도 다른 정밀신검 대상자 훈련병들과 같은 내무반에 배정했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생겼다!!!
그 트랜스젠더 훈련병(?)이 눈물 뚝뚝 흘리며 외치기를...
"어떻게 여자인 저더러 남자들이랑 방을 같이 쓰라고 한단 말예요?"
그러면서 제발 내무반을 독방으로 쓰게 해 달라는 것이다.
우리가 보기에는 생물학적으로 남자이니 내무반에서 함께 지내도 무방한 듯 하고,
30명쯤 들어가는 내무반 하나를 그 친구만 특별히 독방으로 쓰게 해 줄 만큼 내무반이 남아 도는 것도 아니어서
어떻게 해서든 내무반을 함께 쓰도록 설득해 보려 했으나 결국 실패했다.
그래서, 우리 부대에서는 사단 사령부에까지 상황을 보고하고
군대에서는 보기 힘든 레벨의 융통성을 발휘해서 상황을 타개하긴 했는데...
그 후에도 곤란한 상황은 계속 이어졌는데...
얘기를 들어보니, 정밀신체검사에서는
그 사람이 정말 트랜스젠더이냐 아니면 연극하는 것이냐를 판정하기 위해서
과거의 사진을 요구하거나 좀 심하다 싶을 수 있는 사생활까지 캐묻게 되고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누드에 가까운 검사와 촬영 등이 포함되어 있었던가 싶다.
그래서 여자로서 수치심을 느끼고 자존심을 손상받아 하며 무척 괴로워하고 항의했다.
하지만 군에서는 군 나름의 이유가 있으니 어쩔 수 없는 것이고...
하여간, 그 친구도 군이 어쩔 수 없이 취해야 하는 입장을 잘 이해하고
군에서도 사정이 허락하는 한 (나도 놀랄만한) 파격적인 융통성을 거듭 보여주어
엄청 복잡하고 긴 과정을 거쳐 결국 무사히 잘 해결되었긴 했는데...
하여간...
자신이 아무리 여장을 했다지만 실상은 생물학적인 남성임을 뻔히 알고 있는 다른 사람들 앞에서
여자에게 어떻게 남자들과 한 방을 쓰라고 하느냐 항변하며 눈물 뚝뚝 흘리는 그 광경을 보았다면
'자연의 섭리'가 어쩌고 '신의 섭리'가 어쩌고 하는,
대체 어디서 왔는지도 모를 정체불명의 추상적인 당위를 사람에게 들먹이며 강제하려는 짓은
어지간히 인간성이 독한 사람이 아니라면 더 이상 못 하게 되리라.
백번 양보해서 설사 그런 추상적인 당위가 실재한다손 치더라도
그런 당위에서의 예외가 존재한다는 것 (즉 트랜스젠더 등의 존재) 역시 그 '섭리'의 일부임이 분명하고 말이다.
제대하고 복학하니 학교에는 동성애자인권모임도 생겨 있고,
가장 친하고 아끼던 후배들 중에서도 게이인 후배들도 있었고,
하리수 등도 활발히 연예계에서 공개적으로 활동하게 되었고,
세상은 조금씩 바뀌고 있다.
밤새워 침튀기며 떠들어 댈 수 있었겠지만,
그거야 어디까지나 그냥 머리 속에서만 일어나는 '사고실험'이었을 뿐이고
내가 그것들에 대해 가슴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던 가장 큰 두 번의 계기는 모두 군대에서였다.
한 가지는 2009/01/16 - 여호와의 증인에 대한 기억... 에서 얘기했던 여호와의 증인.
다른 한 가지는 트랜스젠더 문제이다.
2009/01/16 - 여호와의 증인에 대한 기억... 에서 얘기한 대로
나는 모 사단의 신병교육대의 대대 인사과가 보직이었는데,
훈련병들이 입소할때마다 신병교육대 측의 훈련병 인수에 참석해서 신원확인을 하고
병무청/사단사령부로부터 우리 신병교육대로 인원을 인수인계받는 일을 한다.
어느 화창한 날에 또 그 인도인접이 있었는데,
어디선가 진한 화장 냄새가 확 풍겨와서 주위를 둘러보니
정말 눈부시게 예쁜 아가씨 한 명이 화사한 옷을 입고
저 멀리 떨어진 그늘의 의자에 다소곳이 앉아 있었다.
그렇게 여자가 와서 앉아 있는 일이 흔한 일은 아니지만 사실 그리 드문 일도 아닌 것이,
입소한 훈련병이 정신질환이 있다거나 질병이 있는 경우
누나나 친척이 와서 무사히 입소가 되었는지 지켜보다가 가도록 허용해 주는 경우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정도로 눈에 띄는 미모는 보기 힘들었고
그 정도로 심하게 향수를 뿌리고 오는 경우도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겨우 얼굴 정도 알고 지내던 이웃 부대 보급병이 얼쩡거리면서 내게 괜히 반가운 척 했다.
"레베 일병님, 제 친구가 이번에 들어왔는데 잘 좀 부탁합니다."
"아, 그래요? 제게 부탁해서 뭐하나요? 저야 그냥 오늘 지나면 별 상관없는데..."
"아뇨, 그게 아니고... 그 친구가 아마도 훈련을 못 받을 것 같은데요..."
"아, 어디 아픈가 보네요?"
"아니... 그게 아니고...."
"네?"
"저기 의자에 앉아 있는 저 친구가 제 친구인데요..."
(잘 못 알아듣고) "아, 저기 보이는 여자친구의 남동생이 입대했나요?"
"아니... 저기 여자처럼 보이는 친구가 제 친구라고요... 쟤가 원래 옛날부터 좀 저래요..."
뭔가 잘 이해가 안 되어서 어리둥절해 하고 있는데, 불현듯 머리를 때리는 것이 있었다.
"아.... 그렇군요... 아..."
그리고서 아무 말도 못 했다.
하여간... 어찌저찌 훈련병 입소 절차를 다 마치고,
군복무가 불가할 정도의 문제가 있어 정밀신체검사를 다시 받을 사람들은
다른 훈련병들의 분위기를 흐리지 않도록 따로 격리시켜서
정밀신체검사가 끝날때까지 내무반을 따로 쓰도록 했는데,
당연히 그 친구도 다른 정밀신검 대상자 훈련병들과 같은 내무반에 배정했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생겼다!!!
그 트랜스젠더 훈련병(?)이 눈물 뚝뚝 흘리며 외치기를...
"어떻게 여자인 저더러 남자들이랑 방을 같이 쓰라고 한단 말예요?"
그러면서 제발 내무반을 독방으로 쓰게 해 달라는 것이다.
우리가 보기에는 생물학적으로 남자이니 내무반에서 함께 지내도 무방한 듯 하고,
30명쯤 들어가는 내무반 하나를 그 친구만 특별히 독방으로 쓰게 해 줄 만큼 내무반이 남아 도는 것도 아니어서
어떻게 해서든 내무반을 함께 쓰도록 설득해 보려 했으나 결국 실패했다.
그래서, 우리 부대에서는 사단 사령부에까지 상황을 보고하고
군대에서는 보기 힘든 레벨의 융통성을 발휘해서 상황을 타개하긴 했는데...
그 후에도 곤란한 상황은 계속 이어졌는데...
얘기를 들어보니, 정밀신체검사에서는
그 사람이 정말 트랜스젠더이냐 아니면 연극하는 것이냐를 판정하기 위해서
과거의 사진을 요구하거나 좀 심하다 싶을 수 있는 사생활까지 캐묻게 되고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누드에 가까운 검사와 촬영 등이 포함되어 있었던가 싶다.
그래서 여자로서 수치심을 느끼고 자존심을 손상받아 하며 무척 괴로워하고 항의했다.
하지만 군에서는 군 나름의 이유가 있으니 어쩔 수 없는 것이고...
하여간, 그 친구도 군이 어쩔 수 없이 취해야 하는 입장을 잘 이해하고
군에서도 사정이 허락하는 한 (나도 놀랄만한) 파격적인 융통성을 거듭 보여주어
엄청 복잡하고 긴 과정을 거쳐 결국 무사히 잘 해결되었긴 했는데...
하여간...
자신이 아무리 여장을 했다지만 실상은 생물학적인 남성임을 뻔히 알고 있는 다른 사람들 앞에서
여자에게 어떻게 남자들과 한 방을 쓰라고 하느냐 항변하며 눈물 뚝뚝 흘리는 그 광경을 보았다면
'자연의 섭리'가 어쩌고 '신의 섭리'가 어쩌고 하는,
대체 어디서 왔는지도 모를 정체불명의 추상적인 당위를 사람에게 들먹이며 강제하려는 짓은
어지간히 인간성이 독한 사람이 아니라면 더 이상 못 하게 되리라.
백번 양보해서 설사 그런 추상적인 당위가 실재한다손 치더라도
그런 당위에서의 예외가 존재한다는 것 (즉 트랜스젠더 등의 존재) 역시 그 '섭리'의 일부임이 분명하고 말이다.
제대하고 복학하니 학교에는 동성애자인권모임도 생겨 있고,
가장 친하고 아끼던 후배들 중에서도 게이인 후배들도 있었고,
하리수 등도 활발히 연예계에서 공개적으로 활동하게 되었고,
세상은 조금씩 바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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