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 기사 [각주:1]와 최근 많은 뉴스들에 의하면 요새 교회가 아예 나서서 정치를 하고 있다. 좀 괜챦다 싶었던 교회 인사들도 요새 본색을 드러내고 있고, 전현직 추기경들도 본색을 드러내고... 그들은 전시작전권 환수 반대를 하느님의 뜻이라 진정 믿고서 이러는 것일까? 하느님은 노태우 정권 때와 노무현 정권때  전시작전권 문제에 대한 뜻을 다르게 가지신 것일까? 이건 좀 너무 심하다 싶은데, 그래도 그들이 무서운 것은 "1주일에 한번씩 모여서 전당대회를 치르고 1주일에 한번씩 당비를 갹출"할 수 있는 무서운 조직력을 갖춘 정치집단이라서 그렇다. 더더구나 나치정권의 괴벨스를 능가할 정도로 대중선동에 능하여 대통령마저 왕따만들수 있는 무서운 찌라시들이 뒤를 봐주고 있으니...

여기에 "마르크스주의가 기독교를 당해내지 못하는 이유"에 관련된(?) 고 정운영 선생님의 15년전 글을 무단으로 퍼왔다. [각주: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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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그람시를 읽으며  /   정운영(전망대)

한 겨 레  1991-10-15  07면 

독실한 기독교 신자로서 대학에서 경제학을 강의하는 ㅂ형이 하루는 내게 마르크스주의가 기독교를 당해내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아느냐고 물어왔다. 내가 우물쭈물하고 있으려니 그는 즉시 이렇게 정답(?)을 공개했다.
“우선 조직의 문제야. 생각해봐. 1주일에 한번씩 전당대회를 치르는 것이 기독교인데,마르크스주의가 무슨 수로 그걸 감당해. 그런데 그뿐만이 아니라구.”
“…?”
“자금의 문제도 마찬가지지. 1주일에 한번씩 당비를 각출하잖아. 그것도 잔뜩 내고는 조금밖에 못내서 미안하다는 기도나 하게 만들고.”
“에이….”
아닌게아니라 그렇다. 4년이나 5년에 한번 당대회를 열고,당비라는 개념조차 생소한 마르크스주의의 정치조직으로서는 기독교의 발치나마 따라가기 힘든 것이 사실일 터이다.
우리야 한바탕의 농담으로 넘겼지만,실상 이 문제와 집요하게 고투하며 평생을 보낸 한 혁명가가 있다. 1891년에 사르데냐 섬에서 태어나 1937년 옥중에서 숨진 이탈리아 마르크스주의자 안토니요 그람시가 그 사람이다. 그는 이탈리아의 가장 급진적인 도시 토리노에서 대학을 다녔고,한때 “혁명이 가능하다고 진심으로 믿지도 않으면서 혁명적 언어를 구사하는”사회당에 가담했다가,마침 올해로 70돌을 맞은 이탈리아 공산당의 창설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그 중앙위원으로 피선된다. 코민테른의 집행위원으로 모스크바와 빈에 파견되었다가,귀국 뒤 국회의원에 당선되었으나 무솔리니의 파시즘에 정면대결을 선언한 뒤 즉시 체포된다. 검사는 “우리는 이 자의 두뇌 활동을 20년 동안 중지시켜야 합니다”라는 그 유명한 문구로 구형했으나,그람시는 그 형기를 다 채우기도 전에 사망함으로써 검사의 소원을 일찍 풀어준다. 감옥생활 9년 동안 2천8백48쪽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의 육필 원고를 34권의 공책에 남겼는데,이것이 현재 우리에게 <옥중수고>로 전해진다.

○일주일에 한번 전당대회를
서너살 때 발병한 신체의 이상으로 그람시는 결국 곱사등이가 되었고,모스크바 근교의 한 요양원에서 만난 그의 부인도 각종 소모증세로 걸음걸이가 불편했었다. 겨우 11살의 소년으로 빵 한덩이를 사기 위해 하루에 10시간을 노동해야 할 만큼 혹독한 가난에 허덕였고,20대의 청년이 될 때까지 어머니가 그의 관과 흰옷을 준비해 두었을 정도로 온갖 질병에 시달렸지만,뒷날 그는 풀 묻은 걸레쪽 같은 삶에서 자신을 구해준 것은 ‘반역의 본능’이었다고 술회한다.20세기의 가장 탁월한 마르크스주의자가 “인간의 정신이 그 물질적 관계로부터 독립할 수 있다”는 역설을 스스로 실행한 셈이다. 창당 이래 무려 40년간 이탈리아 공산당의 ‘대부’ 노릇을 해온 톨리아티가 그의 동향 친구였으며,케임브리지 대학 교수로서 돕과 함께 <리카도 전집>을 편집한 그의 동창 스라파는 나중에 밀라노의 한서점에 그람시 앞으로 계좌를 열어 주어 그의 옥중 독서에 많은도움을 주었다.
마침 그람시의 출생 100돌을 맞아 우리가 그를 기억해야 할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다. 이탈리아의 마르크스주의 운동은 다른 나라에서 찾기 어려운 몇가지 특별한 장애에 부닥치고 있는데,그 하나가 전 세계의 ‘반유물론 통제사령부’의 구실을 담당하고 있는 바티칸의존재이다. 상부 지식층과 하부계층이 유리되지 않는 데서 가톨릭교회의 진정한 힘이 나온다고 보는 그람시의 인식은 그대로 ‘시민사회’로 연장된다. 그의 동료들이 자본주의가 얼마나 취약한 체제인가를 열심히 거론하고 있을 때,반대로 그는 자본주의가 얼마나 강인하며 그 자본주의에서 어떻게 혁명이 가능한지를 면밀히 연구했다. 시민사회는 물리적 폭력을 행사하는 지배뿐만 아니라 도덕적 승복을 수반하는 동의라는 토대 위에 수립된다. 이 ‘동의를 통한 지배’를 그는 헤게모니라고 불렀는데,바로 이 민주주의적 원리가 시민사회를 강인하게 다지는 바탕이 된다. 혁명에 의해 프롤레타리아가 권력을 장악하면,헤게모니는 거꾸로 자본가계급을 해체하는 ‘지배’와 반자본가 계급을 규합하는 ‘동의’로서 여전히 그 기능을 발휘한다.

○로마에 반유물론 사령부가
시민사회의 유산이 없는 소련 혁명의 경험과 교훈을 그대로 서구에 이식하려는 태도에 대해,그람시는 “기동전은 1917년 동방의 혁명에서 승리했지만 서구에서 가능한 것은 진지전뿐이다”라면서 그 토양의 차이를 강조한다.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명제를 프롤레타리아 헤게모니로 바꾸고 기동전 대신에 진지전을 구상한 동기는,아마도 그와 같은 ‘우회’만이 부르좌가 건설한 시민사회의 질서 위에서 혁명을 실현하는 유일한 길이라는 판단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서구사회주의의 고민을 그 이상 어떻게 더 분명히 정리해 낼 수 있겠는가.
자연에서는 떡갈나무가 도토리에서 싹터 나오지만 역사에서는 그런 예견이 항상 가능할 수는 없다고 그람시는 말한다. 예컨대 경제적 토대의 성숙 이전에 상부구조가 먼저 폭발한 “볼셰비키혁명은 마르크스의 <자본론>에 반하는 혁명”이라는 그의 관찰은 결국 떡갈나무가 도토리에서 싹트지 않은 경우에 해당된다. 기본적으로 그는 역사적 유물론에 충실했지만,경제의 ‘궁극적 결정’에 대해 정치와 문화의 중요성을 강조했고,인간의 의지를 경제적 동인으로 발전시키는 방법을 모색했다. 그와는 여러 모로 대립되는 알튀세르조차도 마르크스의 상부구조 이론을 ‘실절적으로’발전시킨 유일한 인물이 그람시라고 치하했다.
그람시는 정치와 허위 윤리의 구별을 강조한 <군주론>의 저자 마키아벨리를 칭찬하면서 ‘현대의 군주’가 바로 공산당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 혁명정당의 지도부는 역사의 진행방향을 이해하는 ‘유기적 지식인’이 맡아야 하며,그들의 영향력은 다시 대중과의 접촉능력에 달려 있다고 역설했다. 대중과 유리된 지식인은 “본대가 없는 전위부대이며,사병이 없는 장군”이기 때문이다. 그는 “생산과 교환의 문제를 기관총과 권총으로 해결하려는” 파시즘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프롤레타리아가 ‘국민계급’이 되어 아래로부터의 통일전선을 형성해야 한다고 설득했다.

○이단과 ‘필요한 이단’ 사이에
이른바 ‘서구 마르크스주의’의 세 거목 가운데 루카치와 코르시는 스탈린에게 대단한 박해를 받았으나,그람시만은 “무솔리니가 그를 감옥에 가둠으로써 스탈린으로부터 구출되는” 행운(!)을 안게 된다. 그의 생각을 이어받아 ‘유러코뮤니즘을 창도했던 이탈리아 공산당마저 지난해 마침내 당명에서 ‘공산주의’란 말을 빼고 당기에서 ‘낫과 망치’를 지우기로 결정했다. 동방의 공산주의만이 아닌 서구의 공산주의에도 수난의 계절인 셈이다. 어떤 의미로는 그 수난에 대비를 가장 먼저 당부한 혁명가가 그람시였기에 그의 생애와 사상을 한번 쯤 되짚어보는 여유가 필요하다. 굳이 그를 이단으로 단죄하겠다면,나는 ‘필요한 이단’으로 판결하기를 권고한다. 그의 출생 100돌에 즈음하여 번역된 주세페 피오리의 <그람시>(두레,1991)는 그의 여러 전기 가운데 가장 정평있는 고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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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와 재향군인회, 대한민국성우회 등 보수단체 회원 5만여명(경찰 추산)은 2006년 9월 2일 오후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사학법 재개정과 전시작전통제권 환수논의 중단을 요구하는 대규모 기도회와 집회를 잇따라 개최했다. 한기총 등은 이날 집회에서 "금년 정기국회에서 사립학교법을 재개정해 줄 것을 촉구하며 재개정될 때까지 불복종운동을 계속할 것"이라며 "전시 작전통제권 논의도 즉각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종순 한기총 대표목사는 기도회 개회사에서 사학법 재개정과 관련해 "교회와 대립한 정권은 결코 잘 될 수 없고 결국은 추락의날개를 달게 될 것"이라고 정부를 비판했다. 피영민(한기총 남북위원장) 목사도 기도문을 통해 "국가보안법이 사문화돼 백주에학교에서 공산주의를 가르쳐도 어찌할 수 없다"며 "대한민국이 벌써 공산화됐다는 얘기마저 나온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기도회에 이어 치러진 국민대회에서는 정부에 대한 비난 수위가 한층 더 높아졌다. ... 중략... 조용기(한국사학법인연합회장) 목사도 "전쟁의 폐허를 딛고 잘 나가던 이 나라가 갑자기 고장났다"며 "정부와 여당이 잘못된 좌파적정책을 추진해 나라가 통째로 내부에서부터 무너지고 있다"고 성토했다. 조 목사는 또 "헌법재판소는 법관으로서의 양심과 명예를걸고 하루속히 사학법 개정이 위헌이라는 판단을 내려야 한다"고 말했다. [본문으로]
  2. 응당 한겨레신문에 링크를 걸었어야 했겠지만 불행히도 인터넷한겨레에는 정운영 전 논설위원의 '전망대'가 올라와 있지 않다. 실망스럽다. 대신 "Louis Althusser and Etienne Balibar" 홈페이지 덕에 타이핑의 수고를 덜었다. [본문으로]
Posted by Rainyva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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